올 가을 귀한 香(향)에 매혹된다. 특집다큐멘터리 5부작 <아시아의 香> 세계사를 움직인 정향과 육두구를 아시나요?
2011년 CNN 선정 세계 50대 요리에는 김치(12위), 불고기(23위), 비빔밥(40위), 갈비(41위) 등 우리나라 음식도 다수 순위에 올랐다. 그럼, 50대 요리 중 1위와 2위는 무엇일까? 바로 렌당(rendang)과 나시고렝(nasi goreng)으로, 한국도 태국도, 프랑스도 아닌 인도네시아 요리다.
인구 2억6,000만 명으로 세계 5위, 만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 이 중에 향료의 섬으로 알려진 몰루카제도는 대항해 시대의 중심지였다.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등 서구 열강의 각축장이 된 이유는 바로 향료였다. 해양실크로드의 주된 교역품은 향료였고, 그 당시 정향과 육두구는 향료 중의 향료였다. 인도네시아 동부해안의 작은 섬들에서만 자랐기에 그만큼 얻기 힘들고 귀했던 이 작물들은 세계 역사를 바꿔놓았다. 유럽인들의 입맛을 매료시킨 정향과 육두구. 이를 차지하기 위해 원주민을 가혹하게 탄압하고 피비린내 나는 전쟁까지 불사하게 만들었던 강력한 힘은 무엇이었을까?
이를 화면에 담기 위해 인도네시아를 찾아갔다. 서민들이 찾는 시장좌판에서부터 수도 자카르타의 고급식당까지 정향과 육두구는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었다. 여전히 가격이 제법 비싸 모든 곳에서 사용하지는 못하지만그 맛을 일부러 찾아다니는 매니아들도 꽤 많은 편이라고 한다. 달콤하며 톡 쏘는 맛이 살짝 느껴지는 정향은 고기의 육질을 부드럽게 하고 생선의 비린 맛을 잡아주는 최고의 향신료로 쓰인다. 육두구는 10m 이상의 나무에 열린 열매 씨앗을 말린 것으로, 독특하고 고유한 향기로 고기의 잡냄새를 없애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자양강장제로 사용하기도 했다. 종자인 육두구를 감싸고 있는 붉은색 종의를 메이스라고 부르는데, 좀 더 고급스런 향으로 고기, 생선 요리의 잡냄새 제거와 음식의 풍미를 더하기 위해 쓰인다.
두 향신료의 주 재배지 몰루카제도의 테르나테를 찾았다. 면적 105㎢에 인구 6만 명의 섬 테르나테는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다가 네덜란드에게 점령당한 후 영국과의 전쟁 틈바구니에서 고통을 받았다. 테르나테의 49대 술탄 누르줄딘은 끔찍하게 죽임을 당했던 선대 술탄들의 역사를 말하며 가슴 아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백 년의 압제를 견뎌온 주민들의 품성은 여전히 온화하다. 그 많은 세월을 눈물로 보내오면서도 자신들의 미덕을 잃지 않고 묵묵히 생업에 종사하는 모습에서 뭐라 이르기 어려운 아시아의 힘을 느꼈다면 과장일까.
정향을 재배하는 주민 아맛 씨는 대대로 정향농사로 생계를 이어왔다. 정향 재배로 17명의 가족을 부양해온 아맛 씨에게 정향은 하늘이 내려준 선물인 듯 하나하나를 매우 소중히 다루고 있었다. 정향은 꽃을 말려 향신료로 사용하는데 그 외에도 쓰임새가 다양하다. 정향 오일은 약재나 미용재로 쓰이고 마사지 테라피에 사용되기도 한다.
한국전파진흥협회의 프로그램 제작지원을 받은 다큐멘터리 <아시아의 香>은 정향과 육두구의 재배지, 거래되고 판매되는 현장, 향신료와 함께 해온 현지 주민들의 삶, 그리고 인도네시아의 독특한 음식문화를 통해 작지만 강렬한 아시아 향신료의 힘을 찾아본다. 대전MBC가 주관사를 맡고 부산MBC, 광주MBC, 전주MBC, MBC충북이 참여해 총 5부작으로 제작되는 <아시아의 香>의 제1부 ‘열강을 매혹시킨 맛 정향과 육두구’는 올 가을에 전국 10개 지역MBC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 한 가지 더. 세계사에 관심이 많거나 식품, 요리업계에 종사하는 이들 외에는 생소한 이름인 정향과 육두구. 혹시 그 맛이 궁금하신가? 우리는 이미 두 향신료를 접해왔다. 드링크제 ‘O명수’의 성분을 살펴보라.
이은표 / 편성국 편성기획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