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에 관한 기억
1989년 가을 M을 처음 만났다.
대입학력고사를 앞두고 캠퍼스에 방문했을 때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를 하게 되었는데 그날 학교 친구들이 TV에 나오는 내 모습을 보았다며 수선들이었다.
대학생이 된 후 금강 뗏목탐사를 계획하던 나는 조언을 듣기 위해 M을 찾았다. 무조건 배를 가볍게 만들어야 한다는 M의 조언으로 PET병 160개로 뗏목을 만들었고, 신탄진에서 부여 구드래에 이르는 4박 5일간의 뗏목탐사는 성공적이었다. 당시의 학과 교수님은 뗏목탐사를 반대했는데, 친구 두 명이 교수님께 설득당한 결과로 나 혼자만 탐사를 떠났다.
세 번째 M을 만난 것은 회사를 그만둔 겨울의 일이다. 창업을 준비하던 조그만 사무실에 카메라를 동반한 M 일행이 방문했고 뉴스에 나갈 인터뷰가 제작되었다. 그때는 물론이고 그 이후로도 간간히 M의 뉴스에 내 인터뷰 영상이 소개되곤 했다. 처음 만난 누군가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에요’라고 할 때마다 나는 그 인터뷰 때문일까 하곤 했다.
1995년, 가끔 만나던 친구 덕에 나는 국내 최초 인터넷 검색엔진을 개발하게 되었다. 1999년엔 우연찮게 만난 누군가의 덕택으로 최초의 양방향 방송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하게 된다. 화학공학 전공자이며 방송에 문외한이던 나에게 두 건의 최초 타이틀은 공교롭게 그 분야 첫 경험이기도 했다. 세상에 파급효과도 컸지만 스스로에게도 큰 충격과 감동을 준 사건이었다.
2011년 회사에 ‘미디어사업팀’을 조직하고 기술개발에 착수했고 방송사업에 대한 갖가지 분석 자료를 수집하고 공부했다. 기존 방송시장의 축소가 예견되고 있었고, 뉴미디어와 결합한 크로스 미디어 콘텐츠 산업으로 재편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콘텐츠의 소비 형태가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생산 과정의 변화도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정부지원사업을 통해 여러 방송국과 협력관계를 넓히면서 양방향 방송에 관한 기술과 경험을 축적했다.
2016년 다시 M을 찾은 것은 양방향 퀴즈코너 ‘아침N퀴즈’를 상의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M을 통해 300회가 넘게 ‘아침N퀴즈’ 코너가 만들어졌는데, 이후 두 건의 정부지원사업 선정으로 이10분어지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본인을 포함한 전체 구성원들의 의견들을 소통하도록 설계된 스마트토크쇼 ‘경청’은 3년여 동안 필드에서 꼭지 이벤트나 기술 제공을 통해 완성된 것으로, M과의 협력으로 방송 프로그램으로 엮어내야 한다.
아이와 엄마를 대상으로 하는 TV 요리쇼 ‘아해의 밥상’은 초연결 커뮤니티를 통해 모두의 반복되는 고민을 해결하는 집단지성을 축적하는 양방향 TV 쇼를 표방하면서도 안전한 먹거리 장터를 연결하는 농수산물 유통 사업과 연계될 수 있다.
나는 M과의 협력을 통해 영상미를 추구하던 정통 방송 미디어에서 벗어나 시청자의 경험을 중시하고 사회문제를 효율적으로 풀어내는 크로스 미디어로서의 성공 모델을 만들 수 있으리라 자부한다.
“일본에는 250개의 지방 방송국이 있고, 모두 어려운 실정이며 앞으로 더욱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래서 대전MBC의 양방향 방송의 성공모델과 경청이라는 양방향 방송 형식에 관심을 갖고 있다.” 코트라에 수소문해서 우리 회사를 찾아온 일본 덴츠사로부터 들은 말이다.
누군가가 생소한 분야의 내 말을 알아들으려면 최소 20번 이상 이야기를 해야 한단다. 그러고 보니 M을 만나는 어느 과정에서 20번은 넘게 이야기된 것들이 차츰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는 느낌이다.
20번 모두 똑같은 말이었을 리는 없다. 반복되는 동안 단어는 점점 더 전문적인 것으로 치환되고 말투도 자연스러워졌을 것이며, 듣는 이 또한 내용에 익숙해지고 어법에도 동화되었을 수도 있고 별도로 공부했을 수도 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이야기할 수 있고, 무시하지 않고 잘 들어줄 끈기만 있다면 무슨 말이든 통하지 못할까?
나는 요즘 M의 장점에 새삼 놀라고 있는 중이다.
첫째,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칠 정도로 쉽게 만날 수 있다. 둘째, 시설과 인력 면에서 양호한 제작 역량을 갖추고 있다. 셋째, 세계에서 한창 인기몰이 중인 한국산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 넷째, 큰 사업이 터지기 전까지 비밀을 쉽게 유지할 수 있다. 다섯째, 미래를 계획하고 투자할 줄 안다.
요즘도 가끔씩 금강보호캠페인을 들을 때면 젊은 날 뗏목 타고 떠났던 기억의 조각들이 파노라마처럼 연이어 펼쳐진다. 대학 신입생인 누군가가 뗏목탐사를 말한다면, 지금의 나는 반대할지 찬성할지 알 수 없다. 다만 그때 M마저 반대했거나 결정적인 도움을 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내 인생에서 중요한 몇 가지 이야기는 존재할 수 없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나는 세상을 무대로 더 넓고 더 많은 M과의 새로운 기억을 만들고 싶다.
내 기억의 영원한 동반자이자 친구인 M, 대전MBC의 미래를 응원한다.
(주)케이시크 대표이사 김영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