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창

전쟁이야기

대전MBC 2017. 6. 16. 13:59

전쟁이야기

브라이언 윌리엄스(Brian Williams)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미국 4대 지상파 방송 가운데 하나인 NBC 뉴스의 저녁 종합뉴스를 10년 동안 진행한 사람입니다. 한 마디로, 길거리에 나가면 누구나 알아보는 유명 인사였습니다. 이런 윌리엄스를 ‘한 방’에 가게 만든 사건이 있었습니다. 거짓말이었습니다. 그것도 12년 전에 했던 전쟁이야기 때문이었습니다. 12년 전에 했던 전쟁이야기가 거짓말로 드러나면서 윌리엄스는 기자라면 꿈꾸는 최고의 자리, 앵커직에서 밀려났습니다.


2003년 1월 30일, 윌리엄스는 전쟁을 앞둔 이라크 상황을 현지 취재했습니다. 유명 앵커였으니 미군에서는 특별 대접을 했고, 그는 군사 헬기를 타고 이라크 상공을 날았지요. 관행대로 군사 헬기들은 세 대씩 무리를 지어 비행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탄 헬기 중 일부가 이라크 저항세력으로부터 RPG(Rocket Propelled Grenade, 로켓 추진형 유탄) 공격을 받아 비상착륙을 하게 됐습니다. 윌리엄스는 자신이 탄 헬기가 공격을 받아 비상착륙을 했다고 저녁 뉴스에서 보도했고 이 보도는 큰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유명 앵커가 탄 헬기가 이라크에서 로켓 추진형 유탄 공격을 받아 비상착륙을 했다니, 우리나라의 상황에 대입해 봐도 얼마나 관심을 끌었을지 충분히 짐작이 갑니다.


그런데, ‘사건’이 발생한 지 12년이 지난 2015년 2월 윌리엄스는 자신의 말이 사실이 아니었다며 사과하고 앵커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문제의 치누크 헬기를 조종했던 조종사 가운데 한 명이, “공격을 받은 것은 윌리엄스의 헬기가 아니었으며, 윌리엄스가 탔던 헬기는 공격 받아 비상착륙을 했던 헬기보다 30분에서 한 시간 더 늦게 도착했다.”고 폭로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폭로에 이어 이를 지지하는 다른 조종사의 폭로도 이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앵커가 탄 헬기가 이라크에서 무장 세력들의 공격을 받아 비상착륙을 했다.”는 영화 같은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라 꾸며낸 거짓말이었다는 겁니다. 윌리엄스의 말이 거짓으로 드러나면서 NBC 뉴스는 방송을 통해 사과를 해야 했고 윌리엄스에 대해 6개월 무급 정직 징계를 내렸습니다.


윌리엄스의 보도가 거짓으로 드러나면서 명 기자, 명 앵커로서의 그의 명성은 추락했습니다. 스캔들이 드러나기 전, 윌리엄스는 앵커의 전성시대라 불리는 1기 앵커시대(탐 브로코, 댄래더, 피터 제닝스)의 뒤를 잇는 2기 앵커시대의 선두주자였습니다. 그가 앵커로 일한 기간동안 NBC 저녁뉴스는 에미상 보도·다큐 부문에서 12차례 수상했고 윌리엄스 본인도 에미상만 2006년에 한 차례, 2007년 두 개 부문, 2009년에 한 번, 2010년에 두 개 부문, 2011년과 2013년, 2014년에 각각 한 번씩 수상했습니다. 매력적인 외모(여배우 앨리슨 윌리엄스가 그의 딸입니다)와 능숙한 진행 스타일 덕분에 그는 동시간대 경쟁 뉴스 프로그램을 제치고 시청률 1위를 계속 유지했습니다. 2008년부터 2014년까지 그가 진행을 맡은 NBC의 저녁 종합뉴스는 단 1주만 빼고 동시간대 뉴스 부문에서 줄곧시청률 1위를 기록했으니 그의 인기를 짐작할 만합니다. 당시 그의 연봉은 천만 달러,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120억 원이었습니다.



"거짓말의 파장은 큽니다.

위대한 기자 한 명이 거짓말 한 마디에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전쟁이야기는 환상적인 이야기입니다. 포탄이 날고, 화염과 포염에 휩싸인 전장에서의 취재는 ‘영화 같은’ 환상을 불러일으킵니다. 영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실화’라는 겁니다. 그만큼 시청자들의 관심이 크고 그래서 종군기자들에 대한 ‘존경’도 큽니다. 종군기자들을 존경한다면 그것은 ‘죽음’ 때문입니다. 전쟁에 불가피하게 따르는 것은 죽음이고, 죽음을 무릅쓰고 현장 취재에 나서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서의 죽음은 가짜 죽음이지만 취재 현장에서의 죽음은 실제 상황입니다. 


최근에 YOLO(You only live once)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지만, 사람은 단 한 번만 살 수 있는 인생을 갖습니다.그 한 번의 인생을 취재에 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 어마어마한 일에 ‘사(邪)’가 낀 것이 드러나면 사람들이 받는 충격은 몇 배

로 더 큽니다.


전쟁 취재는 어려운 도전입니다. 가끔 강연을가면 많이 받는 질문이 ‘위험하지 않았냐’는 것입니다. 전쟁 치고 위험하지 않은 전쟁은 없습니다. 이라크, 동티모르, 소말리아 등 분쟁취재의 경험이 있는 저로서는 수많은 고비를 넘겼습니다. 폭격을 목격한 것은 수도 없거니와 총격전이 펼쳐지는 현장 부근에서 몸을 피한 적도 있습니다. 


불발탄 앞에서 누군가 ‘조심해!’라는 말을 해주어서 겨우 피했던 날, 그날 저녁에는 담배 네 개비를 피웠습니다(평생 피웠던 담배가 열 개비 정도 되는데, 그중 40퍼센트

를 그날 피웠습니다). 이라크가 ‘해방’된 다음대규모 군중 시위가 벌어진 현장에서는 시아파 남성 군중들에 둘러싸여 촬영 카메라는 물론 신체적 위협을 당할 뻔 했는데 겨우 빠져나왔습니다. 시체를 쌓아놓은 더미는 물론, 사지가 절단된 시체, 절단해서 불태우고 땅에 묻어 놓은 시체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광경이 전쟁의 한 단면입니다. 그래서 저는 무용담처럼 전쟁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야기는 잘 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죽고, 부모·형제가 죽고, 내 목숨도 경각에 달린 시민들 앞에서 취재 무용담은 건방진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현장에서 취재할 기회를 가진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기자로서, 인간으로서 겸허하게 그 경험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오늘 문득 윌리엄스를 보면서떠오른 생각입니다. 거짓말의 파장은 큽니다. 위대한 기자 한 명이 거짓말 한 마디에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