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α를 만드는 사람들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지난달 9일, 사람들은 개표 결과와 함께 TV 대선 개표 방송에 집중했다. 단순히 결과를 속속 보도했던 과거 방송과 달리 각 방송사는 CG 신기술로 무장한 개표 방송으로 시청률 경쟁에 승부수를 띄웠다.
AR(Augmented Reality, 증강현실)부터 그래픽 표출 시스템 ‘바이폰(VIPON)’, MR(Mixed Reality, 혼합현실)까지. 긴 시간 지루할 법했던 개표 방송은 신기술로 인해 찬란하기까지 했다. 방송의 재미에 플러스 ‘α’를 만드는 CG, 그래픽을 디자인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보도국 CG는 신뢰와 정확, 확인 또 확인
“보도국 자막은 생방송에 맞춰 자막을 송출해야 하기 때문에 잠시도 한눈을 팔 수 없어요. 기사에 맞춰 작성한 자막을 순서에 맞게 송출 버튼을 한 번씩 눌러야 하는데 순간 더블 클릭하면 사고가 나는 거죠. 디자인하는 시간은 창의적인 영역일 수 있어도 송출할 땐 머리를 비우고 단순하게 버튼을 누르는 일에만 집중해야 해요.”
(원주영)
대전MBC CG팀은 홍영진, 오혜린, 원주영, 세 명의 디자이너가 맡고 있다. 보도국 CG를 담당하는 원주영 디자이너는 뉴스자막의 기본은 신뢰감을 줄 수 있는 형태로 요란하지 않고 안정감을 주는 글씨체와 색감으로 디자인한다고 설명한다. 혹시라도 맞춤법에 어긋나는 자막이 나올까 3~4번 확인 작업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의 눈으로 지적하는 시청자는 가장 어렵고 두려운 대상이다. 5개월간 뉴스 자막에만 매달리다 보니 꿈을 꿔도 뉴스만 나온다. 스물다섯 풋풋한 나이에 또래 친구와 대화중에도 정치 아니면 지역의 사건 사고 소식만 읊어대 아줌마 소리 듣기도 여러 번이다. 그래도 컴퓨터 앞에 매달려 만든 자막이 방송에 나오고, 그로 인해 프로그램 완성에 일조했다는 뿌듯함에 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뉴스 작업은 그래픽 디자이너라면 한 번씩 다 거쳐 갈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 평소에도 타 방송국 뉴스를 눈여겨봐요. 그런데 보다 보면 내용은 안 들리고 자막만 눈에 들어오죠. 영화 볼때도 자막을 읽는 게 아니라 서체 디자인을 분석하고 있죠. 셋다 그래요. 직업병이죠. 하하.” (원주영)
변화하는 CG 트렌드, 고민하고 공부하고
프로그램의 재미는 살리고 이해를 돕는 CG, 이제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CG는 극 중 관전 포인트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해도 프로그램에서 사용해 왔던 기존 틀에서 한순간 벗어나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변화하는 신기술 속에 나 홀로 옛 틀을 고수하는 것도 뒤처져 보인다. 방송국 그래픽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고민하는 대목이다.
“시청자 입장에서 보기에 좀 더 신선하고 톡톡 튀는 그래픽이나 자막을 원하실 수 있어요. 저희도 신조어로 자리 잡은 유행어나 신선한 이모티콘 등은 재미를 위해 넣고 싶을 때도 있죠. 하지만 프로그램 성격과 주 시청자 연령대 등을 고려해서 신중하고 단계적으로 해야 한다고 설명해 드리고 싶어요.” (홍영진)
CG란 ‘프로그램 영상으로 못다 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는 홍영진 디자이너는 새로운 트렌드와 기존 스타일 사이의 간극을 줄이는 것이 고민이라 말한다. 자막을 만들 때는 한 문장마다 디자인을 만들어 작가와 PD의 확인과 수정을 거쳐 영상으로 들어간다. 자간과 크기, 색감의 미세한 차이를 홀로 고민하고 디자인한다. 언제나 그렇듯 몇 초 만에 긴 시간 작업한 분량이 휙 지나가 버리지만 그래도 그래픽 디자이너는 오늘도 선(線)과 싸우고, 시간과도 싸운다. 늘 뭔가 새로운 시도를 꿈꾸기에 새로운 틀로 스타일리시하게 CG를 제작하는 파일럿 프로그램을 볼 땐 더 욕심이 난다.
“유행을 모두 반영할 순 없지만 흐름은 알고 있어야 해요. 요즘 추세는 폰트, 색, 특히 자막 테두리가 심플하게 만들어요. 글자는 플랫하게, 색은 단색으로. 그러데이션은 많이 쓰지 않아요. 사실 소소한 차이를 눈치 못 채지만 전체적인 세련미엔 영향을주죠. 영상미를 해치지 않으며 프로그램의 재미와 감동을 더하는 CG를 만들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CG팀이 만드는 ‘+α’, 지켜봐 주세요.” (오혜린)
안시언 /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