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온천문화축제
5월 13일, 유성온천문화축제에서 통역을 맡게 된 나는 아침 일찍부터 준비를 서둘렀다. 처음 만나는 대사관, 참사관 귀빈들의 통역을 맡아 대전을 찾은 분들을 맞이하려니 살짝 긴장도 되고 기대도 되었다. 집을 나가는데 아침 일찍 일어난 아빠가 대전MBC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자청하셨다.
별 생각 없이 차를 타고 가는데 아빠한테서 뜻밖의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온천 축제가 처음 만들어지는데 할아버지가 기여하셨다는 것. 물론 할아버지께서 축제를 혼자 다 만드신 것이 아니라 아마도 축제를 만드는데 ‘참여하셨다’ 정도가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다만 온천 축제가 24년 전부터 꽤 오랜 기간 이어져왔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는데, 그 축제에 할아버지가 관여하셨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에 좀 놀라운 이야기였다.
축제 후에 할아버지께 전화를 걸어 자세히 여쭤보았다. 할아버지 말씀으로는 온천 축제가 시작되기 한참 전에 ‘온천사업자협의회’라는 것이 만들어졌는데, 그때 할아버지는 총무를 맡으셨고, 그 시절부터 온천 축제가 구상되고 기획되었다고 한다.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그 시절에 우리나라에는 축제 자체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또한 전국의 온천을 연결하는 통일된 시스템도 없었는데, ‘온천사업자협의회’라는 단체가 유성에 만들어지고 나서야 전국적으로 퍼지게 되었다고 한다.
갑자기 그 시절의 온천 축제는 어땠을지 무척 궁금해졌다. 유명 가수나 DJ 대신 어떤 축하공연이 있었을까? 대형 슬라이드나 체험 부스 대신에 무엇이 있었을까? 할아버지 말씀으로는 그 당시 온천 축제의 주된 모습은 마을 사람들이 온천수를 떠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축제니까 유명한 노래꾼이 오지 않을까 상상했는데 그런 모습은 아니었다. 온천수가 병을 낫게 하고 영험한 기운이 있다고 여겼으니 제사를 지내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과거의 온천 축제가 제사를 지내고, 음식을 만들어 마을 사람들과 나누는 동네잔치 같은 것이었다면, 2017년 유성온천문화축제는 규모부터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유성뿐만 아니라 타 지역 사람들까지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함께했고, 축제 프로그램도 굉장히 다양했다. 대형 슬라이드, 거리 퍼레이드, 인형극 등이 여기저기에서 진행되었다. 남녀노소 누구나, 많은 외국인들도 참여해 축제를 즐겼다.
내가 통역을 한 주한 외교 사절단들도 모두 족욕장에서 양말을 벗고 족욕을 체험했다. 아무래도 아제르바이잔, 잠비아, 캐나다 등에서 온 사람들에게는 이런 족욕이 꽤 신선하게 느껴졌을 것 같다. 그것도 야외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온천에 발을 함께 담그고 있는 것이 그들에게는 흔치 않은 경험이었을 것이다. 온천수의 온도는 어떻게 맞추느냐, 물은 얼마나 자주 바꾸느냐, 온천의 성분은 무엇이냐 등 온천에 대해 아주 자세하게 질문했다. 족욕이 평일에도 무료로 일반인들에게 오픈되어 있다고 했을 때 매우 좋다며 칭찬의 반응이었다.
족욕과 함께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온천 거리 퍼레이드였다. 어린 아이들부터 나이 드신 어른들까지, 선비와 훈장님 코스프레부터 K-Pop 댄스까지 퍼포먼스가 참 다양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축제를 위해 열심히 연습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퍼레이드 도중에 비가 내렸는데, 퍼레이드를 하는 사람도, 관람하는 사람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축제를 계속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외교 사절단을 포함해서 축제 속 사람들이 비에 젖은 모습으로 비가 그친 후에도 끝까지 축제를 즐기는 것을 보면서 다들 열정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과거 온천 축제 이야기도 듣고, 유성온천문화축제도 참가하면서 우리나라의 문화가 그동안 얼마나 바뀌었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들도 있다. 과거에도 유성에는 이팝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을 것이고, 미래의 온천 축제에도 아마 그럴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이 소중한 온천이 있기 때문에 과거에도, 오늘날에도 사람들이 모여 축제를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곁에서 변하지 않는 것들의 소중함을 알고 감사하는 마음이 바로 우리가 온천 축제를 매년 이어가는 이유일 것이다. 온천 축제는 우리에게, 일상 속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 가족, 내가 사는 대전, 온천 등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소중한 기회였다.
유성온천문화축제 통역사 박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