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갑내기 친구, 대전MBC
“여보세요?”
“주홍아! 나 정환이야! 너 내일 뭐해? 아니, 내일 1시 반까지 대전MBC 로비로 가봐. 2시부터 녹음이라는데 네가 가봐야 되
겠다. 펑크내면 안 돼. 꼭 가라. 내가 전화해 놓을게.”
“뜬금없이 무슨 이야기야! 방송은 또 뭐고 ….”
“뚜 뚜 뚜 뚜”
“여보세요. 여보세요. 뭐야!”
학교 친구인 정환이한테 전화온 건 1987년 1월이었다. <오픈
스튜디오>라는 라디오 프로에서 대학가 MC들이라는 주제로
대전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MC들을 초대해 토크쇼를
한다는 것이었다. 방송 전날 리허설에 참여했던 친구는 갑작스
러운 일 때문에 나보고 대신 가라는 것이었다.
다음날 대전MBC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했고, 며칠 후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김주홍 씨. 지난번에 봤던 MBC 이PD입니다. 혹시
저희와 방송할 생각 없나요? 사실 이번 게스트 중에 한 명 선
발해서 같이 방송할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김주홍 씨가 즉흥가세!
적인 질문에 재치 있게 대답도 잘하고 방송에 적합한 거 같아
서 같이 방송을 했으면 좋겠는데 ….”
갑작스런 제안에 멍했지만, 어렸을 적 텔레비전을 보면서 방송
에 대한 꿈을 꾸고, 늘 해보고 싶었던 일이었기에 흔쾌히 승낙
을 했다.
<오픈 스튜디오>는 준공개방송으로 당시 대학동아리모임, 여
군장교, 간호사 등 청취자를 스튜디오에 초대해서 토크쇼를
진행하는 프로그램으로, 나는 프로그램 중간에 들어가 퀴즈,
개그 등을 통해 분위기를 업시키는 코너를 맡아 첫 방송을 시
작했다,
청소년들을 위한 라디오 프로그램 <젊음이 있는 곳에>서는 ‘괴
짜들의 행진’ 코너를 맡아 중·고등학교를 찾아다니며 각 학교
의 괴짜들을 만나 특정 주제를 발표할 수 있도록 진행을 했다.
그때 정말 대단한 인기 코너였던 것이 자기 학교를 찾아와 달
라고 방송국에 엽서가 넘쳐났고, 걸어서 학교에 들어갈 때면
학생들이 수업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창밖으로 환호성과 함께
손을 흔들며 서로 자기 반에 와주길 기대했다. 지금의 아이돌
만큼의 인기였다고 할까. 괴짜들의 재치에 듣는 어른들도 굉장
히 재미있어 했던 코너였다.
늘 일부 코너를 통해 청취자를 만났던 내가 첫 MC를 맡은 프
로그램은 <여성시대>였다. 당시 미혼 총각이었던 나에게 <여성
시대>는 청취자 사연을 통해 여성의 마음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방송이었다. 4녀 1남로 그동안 손 하나 까닥하지 않았던
내가 집안일에 대한 관심도 많이 갖게 되었다. 결혼 후 아내와
잘 사는 비법 중의 하나가 그동안 <여성시대>에서 배운 노하우
가 아닐까 생각한다. 한 방송을 10년 동안 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은데 MC로서 영광스럽게도 10년을 진행한 프로그램이 <여
성시대>였다.
이후 <즐거운 오후 2시> 초대 MC로 자리를 옮겨 청취자를 계
속 만났다. 하루 중 가장 피곤함이 몰리는 시간으로 어떻게 하
면 청취자에게 활력을 넣어줄 수 있을까? 즐겁고 유쾌한 시간
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며 늘 즐거운 방송이 될 수 있도록 했
다. ‘하하호호퀴즈’, ‘괜찮아요 노래방’ 등 참여형 코너들도 있
지만, 청취자와 매일 소통하고자 수시로 질문을 통한 문제해결을 위해 청취자 문자 참여가 이루어진다. 이 문자로 안부를 전
하기도 하고, 동창회 모임을 홍보하기도 하고, 심지어 귀농한
지 얼마 안 된 분이 ‘깨 심는 시기나, 깨가 안 나오는데 언제 나
오는지?’ 농사짓는 방법들을 일일이 질문하면 농사하는 분들의
답변이 올 정도이다. <즐거운 오후 2시>를 통해 농사를 짓는 분
들을 문자농사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청취자와 직접 소통을
위해 전화 연결도 많이 하는데 많은 분들이 기억에 남지만 <즐
거운 오후 2시>가 생명의 은인이라고 하는 분이 있다. 그분은
어느 날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나쁜 마음을 먹고, 그 장소
에 갔는데 거기에서 마지막으로 우리 방송을 듣게 됐다고 한
다. 듣다 보니 방송이 너무 재미있고, 힘들지만 열심히 살아가
는 청취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세상 다시 행복하게 살고
싶은 용기가 생겼고, 지금은 열심히 살고 있다고 했다.
지금도 진행하고 있는 <즐거운 오후 2시>는 찰떡궁합을 자랑
하는 나의 파트너! 나이답지 않게 어른스러움을 갖고 있어 발
랄하다가도 나이든 청취자의 깊은 속까지 이해하고 소통하는
모습을 보면 참 어른스럽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이수진 MC,
배우의 외모를 가졌다고 주장하는 김수연 작가, <즐거운 오후
2시> 지휘자 김종찬 국장, 그리고 무엇보다도 늘 함께하는 즐
투 애청자들이 있어 더 빛나고 유익한 방송인 것 같다. 언제나
2시 15분이 기대되고 기다려지는 이유 중에 하나이다.
친구 대타로 참여한 방송 때문에 대전MBC와 인연은 시작됐
고, 30년간 계속되고 있다. 나와 동갑내기인 대전MBC, 100주
년까지 평생 친구로 같이 가세!
김주홍 / 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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