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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행사

청중들을 위한 90분간의 다채로운 음악 상차림 대전MBC 창사 53주년 & 「4차 산업혁명 특별시 대전」 기념음악회 대전시립교향악단 AI와 클래식이 전하는 판타지

지난 11월 2일, 대전예술의전당에서 펼쳐진 대전MBC 창사 53주년 & 「4차 산업혁명 특별시 대전」 기념음악회는 클래식에서 현대음악까지 90분간의 다채로운 음악 상차림을 펼쳐냈다. 청중들에게 음악적 포만감을 안겨준 그날의 무대를 다시 돌아본다.






새로운 음악을 경험하는 자리

아르스 노바(Ars Navo). 라틴어로 ‘새로운 예술’을 뜻하는 이 말이 음악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14세기지만 이 단어가 지닌 힘은 21세기 한국에서도 여전하다. 귀족주의의 붕괴와 함께 시작된 14세기의 ‘아르스 노바’가 종교음악을 탈피해 세속적 음악으

로의 ‘변혁’을 중시했다면, 21세기의 그것은 눈부신 변혁보단 조용한 ‘확장’의 개념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대전시립교향악단의 이번 음악회는 현대의 ‘아르스 노바’였다.


AI가 작곡한 음악을 세계 초연으로 연주한다는 것은 대전시립교향악단에게는 미지의 땅이었다. 아직 가보지 못한 그 땅이 조심스럽고 낯선 것은 청중들 또한 마찬가지. 척박한 땅일까? 풍요로운 땅일까? 새로운 음악을 맞는 기대감이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에 가득 차올랐다.


꽉 찬 객석, 가득한 음악

청중의 반응은 뜨거웠다. 구스타프 홀스트의 <행성-4악장 목성>, 존 아담스의 <빠른 기계에 잠깐 탑승>, AI작곡가 에밀리 하웰의 <유년기의 끝>. 세 곡의 음악이 연달아 연주되고 끝이 났을 때, 찰나의 침묵 뒤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연주회를 찾은 김영조(44) 씨는 “짧은 꿈을 꾼 것 같다. 빠른 기계에 잠깐 탑승해 목성에 다녀오니 지구에서의 한 시절이 끝나버린 것 같은 느낌? ‘에밀리 하웰’의 곡은 약간 허무함이 느껴진다.”고 감상평을 밝혔다.


‘에밀리 하웰’은 2009년 미국 UC산타크루즈대학 데이비드 코프 교수진이 개발한 AI작곡 프로그램이다.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에 두고 화음, 박자 등을 자료화하고 이를 조합하는 방식으로 바로크에서 현대음악까지 다양한 형식의 음악을 만들어낸다. 하웰의 음악이 국내에서 첫 연주된 것은 지난해 8월 경기필 하모닉오케스트라에 의해서다. 당시 연주회는 ‘모차르트 vs 인공지능’이라는 콘셉트로, 에밀리 하웰이 작곡한 모차르트풍 교향곡과 진짜 모차르트의 교향곡을 들려주고 어느 음악이 더 아름다운지를 고르는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투표결과는 272대 514. 관객들은 ‘인간’ 모차르트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번에 연주된 <유년기의 끝>이라는 작품은 더욱 특별하다.


대전시립교향악단이 데이비드 코프 교수진에게 음악회의 취지를 설명하고 별도로 작곡을 의뢰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대전에서 세계 초연되는 작품’이라는 수식어가 음악에 깊게 감응하게 만드는 하나의 장치로 작용했다. 엄마 손을 잡고 공연장을 찾은 김예린(10) 어린이는 ‘인공지능이 사람 입장에서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서 작곡을 한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고, 박주현(38) 씨는 ‘음악 자체보다는 이런 작은 시도들이 예술의 폭을 더 넓히고 생각도 환기시켜주는 것 같다’며 실험정신을 호평했다.


노래하는 피아노 소리

이번 음악회의 핵심은 단연, 피아니스트 서혜경의 무대였다. 서혜경은 1980년대 음악계의 슈퍼스타였다. 1980년 부조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최고상을 수상하고 독일 뮌헨ARD 국제 콩쿠르에서 2위 없는 3위를 거머쥐며 국제적 명성에 날개를 달았다. 그녀는 풍부한 음향과 자유로운 리듬감에 휩싸인 열정적 피아니즘으로 많은 청중들을 매료시키며 전설적인 지휘자, 오케스트라와 함께 호흡을 맞추었다.


올해 봄, 아시아 주요 4개 도시(서울, 상하이, 도쿄, 홍콩)에서 개최된 ‘아시아 투어 리사이틀’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온 서혜경은 자신의 주요 레퍼토리인 ‘베토벤’으로 이번 무대에 올랐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5번 내림 마장조, 작품 73 황제. 서혜경의 폭발적인 카덴차는 여전했다. (그녀는 오래전 MBC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 동네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는 ‘서혜자’로 깜짝 출연. 베토벤의 ‘황제’를 기가 막히게 연주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실황으로 들어야만 얻을 수 있는 음악의 감동이 있다. 공기를 타고 전해지는 음압, 피아니스트의 움쩍거리는 표정, 지휘자의 흔들리는 머리카락, 때론 웅장하게 때로는 섬세하게 노래하는 피아노 소리 …. 세 번의 커튼콜을 받고 두 번의 앙코르를 연주한 서혜경의 무대는 청중에게 그렇게 성대한 현장의 감동을 전해주었다.


김가미 /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