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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가사람들

“올해는 일과 사랑, 두 가지 모두 잡을 거예요~”




긍정의 나비 효과를 기대하며

새벽 4시에 눈을 뜬다. 방송이 있는 주중엔 카페인과 알코올, 칼로리 높은 저녁 식단을 포기한다. 한 번쯤은 적당한 알코올을 곁들인 기름진 야식 세트에 눈 질끈 감고 넘어가고 싶은 유혹도 생수 한 모금 꿀떡 삼키며 훌훌 떨친다. 동료들과 모처럼 어울릴 수 있는 저녁 회식에도 도중에 눈치를 보며 빠져나와야 한다. 끊임없는 절제와 혹독한 자기 관리가 반복되는 삶이지만 ‘행복하니?’라고 묻는 말에 0.1초의 고민도 없이 답이 튀어나온다. ‘너무 좋은데?’


8개월 만에 다시 만난 박찬송 기상캐스터는 한 층 여유 있는 목소리로 그간 현장을 겪으며 느낀 소회를 전했다.

“제 SNS에 ‘오늘 찬송 씨 예보랑 날씨가 딱! 맞았네요.’라고 글을 남겨주시는 분이 계세요. 온도와 습도에 예민한 빵과 이스트 등을 다루기 때문에 대전MBC 기상예보를 늘 참고한다는 격려 글을 볼 때 뿌듯하고 어깨가 무겁죠.”

첫 벚꽃 개화 시기를 알리고 절정을 이룬 봄꽃 소식을 날씨 소식과 함께 전했지만 정작 본인은 꽃구경도 제대로 못 하고 봄을 보냈다고.


“지인 부탁으로 어느 초등학교에서 진로에 대해 짧은 강의를 하고 온 적이 있었어요. 초·중·고등학교마다 진로 멘토링 프로그램은 많은데 학교마다 강사 직업군이 천차만별이라고 말하더군요. 한부모 가정이 많은 그 초등학교는 대체로 소득층이 낮은 지역에 속해있었어요. 소위 문제아라고 불리는 아이들이 많아서 지도 교사도 애먹는 곳인데 강의를 해 줄 수 있냐는 부탁에 흔쾌히 다녀왔죠.”


재능 기부라는 거창한 명칭은 정중히 사양한다는 박 기상캐스터는 그날 많은 것을 채우고 왔다고 눈가를 붉혔다. 조금 부족한 삶을 사는 아이들이지만, 그토록 빛나는 눈망울로 그녀의 목소리와 행동을 주시하며 손을 번쩍번쩍 들고 질문을 했다. 아이들은 박찬송 이름 세 글자로 찾은 유튜브 영상을 강의 전 보고 들어왔다고 말했다. 날씨를 전하던 기상캐스터가 아이들을 붙잡고 건네는 말 한마디에 아이들은 또 다른 내일을 꿈꾸듯 눈을 반짝였다. 그 모습에 박 기상캐스터도 숨이 가빴다. 부디 긍정적인 나비효과가 이들에게 나타나길 가만히 기도했다.


찬송·찬규 주크박스 남매가 함께합니다, ‘다음 소절을 부탁해∼’

라디오 DJ는 어린 시절 그녀의 꿈이었다. 방송 밥을 먹는 지금, 무엇보다 감사한 일은 작게나마 그녀의 꿈을 이뤘다는 점이다. TV로 얼굴을 알리고 두 달 후, 박찬송 기상캐스터는 <정오의 희망곡> 속 ‘다음 소절을 부탁해’(이하 다소부) 코너를 맡았다. 청취자 참여로 이뤄지는 ‘다소부’는 앞 소절을 진행자가 부르면 다음 소절을 청취자가 따라 부르는 것으로 성공 여부를 따진다. 음정 박자 모두 무시하고 가사만 맞으면 장땡! 대전MBC의 대표 입담꾼인 박찬규 리포터와 함께 진행하는 코너로 이긴 팀에겐 근사한 먹거리 상품권을 지급한다.


“처음엔 나가수처럼 혼자 열창을 했어요.(웃음) 그런데 하다보니 잘 부르는 건 아무 소용이 없어요. 무조건 다음 가사가 나오도록 이끌면 되는 거죠. 멜로디만 살짝 가미한 스피드 퀴즈? 아무튼, 은근 승부욕 돋게 하는 코너라 눈에 실핏줄이 터져도 모를 정도로 정신 쏙 빼놓고 즐기다 오는 곳이에요.”


나무로 지은 방에 들어가면 특유의 나무 향이 가득하듯 라디오엔 라디오가 주는 특유의 따뜻함에 마음이 보드라워진다고 박 기상캐스터는 빙긋 웃는다. 수요일 짧은 한 차례 만남이지만 청취자는 순간의 목소리로 자신의 컨디션까지 간파해 낸다며 ‘정직하고 무서운 매체가 라·디·오’라고 그녀는 말한다. ON AIR에 불이 켜지면 청취자의 사연에 귀 기울이랴, 자기 차례 챙기랴 마음이 바쁘지만, 전화나 문자를 통해 현장에서 진솔한 말들이 오가는 것은 라디오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이라고. 가끔 청취자 사연을 듣고 눈물샘이 터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도 있었다며, 그때마다 유지은 DJ와 박찬규 리포터의 솜씨 좋은 커버는 두고두고 감사하다고 전한다. ‘선배 없인 나도 없다’며 운명 공동체를 거듭 강조하는 박찬송 기상캐스터는 봄꽃은 졌지만 내 마음에 아직 봄은 오지 않았다며 올해엔 일과 사랑 두 가지 모두 잡아 보겠다고 예쁘게 주먹을 쥐어 본다. 오늘 하루 성실히 날갯짓한다면 몇 년 뒤 어느 날 폭풍 성장한 나를 대면할 것이란 것을 믿는다고.


안시언 /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