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ce Upon A Dream’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끊이지 않는 박수와 환호의 현장
무대가 폭발했다. 압도적인 가창력과 화려한 퍼포먼스, 실험대 위로 솟구치는 불꽃과 눈 깜짝할 새 바뀌는 거대한 세트가 공연 내내 숨 쉴 틈도 주지 않는다. 숨소리와 손짓 하나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그들은 진정 ‘배우’였다. 너무도 익숙해 더는 새로울 것 없는 지킬의 독창, ‘지금 이 순간’이 울려 퍼지자, 관객은 모두 숨을 죽였다. 그리고 기립했다. 박수가 멈추지 않았다.
지난 12월 대구 공연을 시작으로 월드 투어에 나선 <지킬앤하이드>는 국내 창작진과 브로드웨이 배우들이 만나 보다 화려한 무대 퍼포먼스와 탄탄한 스토리 구성으로 제작부터 화제를 모았다. 지난 10여 년간 <지킬앤하이드> 프로덕션을 이끈 오디컴퍼니가 제작을 맡은 이번 월드 투어는 대전MBC 주최로 대전 공연(13~15일)을 성황리에 마치고 천안 공연을 앞두고 있다. 천안 공연은 오는 20일부터 22일까지, 3일간 진행하며 3월 서울 공연을 끝으로 중국과 유럽, 미국까지 진출할 예정이다. 이미 국내에서 오랫동안 공연된 작품이란 점에서 기대보단 위험 부담이 컸으나 새로운 의상과 보완된 스토리는 ‘업그레이드된 좋은 예’로 평가받고 있다. 관람을 마친 관객 역시 <지킬앤하이드>의 돌풍을 예감하고 있다.
인간의 이중성, 그리고 그를 향한 두 여자의 아름답지만 비극적인 사랑이 극을 관통하는 <지킬앤하이드>는 어둡고, 애절하며 관능적이다.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아버지를 구하고자 선과 악을 분리하려는 지킬의 몸부림은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이를 지켜보는 엠마는 절규한다. 그리고 밑바닥 인생을 사는 창녀 루시는 가련하고도 관능적인 몸짓으로 보는 내내 관객을 사로잡는다.
"선과 악, 빛과 어둠 - 드라마틱한 조명의 미학"
자신의 연구로 아버지를 구할 수 있으리라 희망했던 지킬의 좌절, 그리고 지킬이 인정할 수 없으나 해방된 또 다른 자아 하이드. 장면마다 내재된 갈등과 감정의 고조는 현란하고 영리한 조명의 연출로 극적인 효과를 선보인다. 극 중 무대는 고딕 양식의 지하 실험실이었다가, 여인들의 웃음을 파는 홍등가였다가 지킬의 결혼식장으로 변화무쌍하게 변신한다. 대사와 안무가 빠지더라도 조명만으로 인물의 심리 상태를 이해할 정도로 조명은 제2의 대사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이와 함께 볼륨감을 극대화한 빅토리아 시대 의상을 더욱 도드라지게, 천장까지 쌓인 실험실의 약병을 더욱 그로테스크하게 조명한다.
그런가 하면 약혼녀 엠마가 등장할 때면 여지없이 뽀얗고 환한 순도 100%의 조명이 그녀를 따라다닌다. 선과 악의 자아로 혼란스러워하며 ‘날 버리지 말아요. 엠마’라고 절규하는 지킬에게 ‘언제까지나 기다릴게요’라며 천사처럼 답하던 엠마에게 쏟아지던 조명처럼, 작품 속 조명은 인물을 대변하는 시그널로 작용하기도 한다. 망사 스타킹과 코르셋을 입고 손님을 유혹하던 루시의 붉은 조명은 얼마나 또 관능적이었던가.
"마법 같은 순간들 - 작품보다 유명한 넘버의 향"
<지킬앤하이드>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우아하고 고결한 신사 지킬과 순수한 욕망의 발로인 하이드의 극명한 대립이다. 브래들리 딘의 지킬은 한없이 다정하며 구원을 갈망한다.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으며 억양은 부드럽고 노래는 매끄럽다. 그리고 순간, 머리를 산발하고 성대를 긁어 발성하고 악센트에 변화를 주는 것만으로 순수한 악마, 하이드로 변신한다. 심지어 한 몸인 지킬과 대화를 주고받으며 ‘위험한 게임(Dangerous game)’을 하기도 한다. 브래들리 딘은 지킬이자 하이드, 그 자체인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한다.
여기에 섹시하다는 말로는 온전히 표현할 수 없는 다이애나 디가모의 ‘루시’가 극을 더욱 농밀하게 달군다. ‘아메리칸 아이돌 시즌 3’의 준우승자인 다이애나는 가녀린 소녀 톤으로 대사를 읊다가도 장중한 오케스트라의 연주 소리를 뚫고 올라오는 가창력을 선보인다. 다이애나의 목소리엔 특유의 비애가 서려 있다. 그래서 새로운 내일을 감히 꿈꾸며 침대 위에서 노래한 ‘새로운 삶(A new life)’은 더욱 처연하고 절절하다.
그리고 지킬의 ‘지금 이 순간(This is the moment)’ 넘버는 가사처럼 ‘영혼마저 다 걸고’ 기립 박수를 치게 한다. 이외에도 명품 넘버들이 150여 분간 쏟아져 어느새 눈을 자막 화면이 아닌 배우의 얼굴과 몸짓에 고정시키는 마법 같은 시간을 경험할 것이다.
안시언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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